비지시적 치료
Rogers는 로체스터의 아동보호 상담소에서 일하면서 정신분석을 비롯한 기존의 치료법들이 임상 현장에 적절치 않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특히 내담자가 무엇 때문에 상처를 입었으며 어떤 문제가 중요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내담자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름의 치료 방법을 모색하였다.
1940년에 오하이오 주립대학으로 옮겨온 Rogers는 비지시적 치료를 발전시키게 된다. 그는 치료과정에서 내담자가 스스로 책임지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이러한 심리치료에서 중요한 것은 치료자와 내담자의 관계로서 치료자는 내담자가 자신의 느낌과 내면세계를 자유롭게 탐색하도록 허용하면서 내담자가 자기 삶에 대한 책임 의식을 발달시키도록 돕는다. 내담자의 감정과 생각을 반영해주는 것이 이 시기에 적용했던 가장 핵심적인 치료기법이었다. 이러한 치료적 관계 속에서 내담자는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새로운 긍정적인 방향으로 행동하게 된다. Rogers는 자신의 치료 방법을 '비지시적(nondirective)'이라고 지칭함으로써 치료자가 주도적인 지시적 역할을 하는 기존의 전통적인 치료와 차별화하였다(Rogers, 1942).
Roger는 비지시적 치료를 발달시키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우선 Rogers는 로체스터에서 일할 때 Otto Rank의 세미나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Rank는 Freud의 정신분석적 접근에서 이탈한 인물로서 내담자가 자신의 창조성과 고유성을 발현하게 하고 자기 삶에 대한 책임을 수용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 치료자는 권위적인 전문가가 아닌 비판단적 조력자의 역할을 해야 하며 내담자의 과거력 조사나 치료기법보다 개인의 고유성과 내면적 경험을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urt Goldstein(1959)이 제시한 자기실현 개념은 인간중심 치료의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개인은 자기 잠재력을 충분히 발현하려는 건강한 발달 동기를 지니며 그럴 수 있는 잠재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의 자기실현 개념은 인간중심 치료의 기본적 인간관을 형성하였다. Rogers는 자유와 선택, 개인적 가치, 책임을 중시하는 실존주의자들의 영향도 받았다. Rogers는 '나-너(I-Thou)' 대화와 진실한 인간관계를 강조한 Martin Buber의 견해를 높이 평가하였다. 현재의 경험과 내담자의 현상학적 세계를 중시하는 점에서 Rogers는 실존주의자들과 유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1942년에 출간한 저서 '상담과 심리치료'에서 Rogers는 상담 과정에 대한 그의 입장과 비지시적 치료방식을 다양한 사례와 함께 제시하였다.
내담자 중심 치료
1945년에 Rogers는 시카고 대학교로부터 상담센터를 설립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심리학 교수이자 상담센터 소장으로 재직하던 시카고 대학교에서의 12년은 Rogers에게 가장 생산적인 시기였다. 상담센터는 곧 학생과 지역주민을 위한 중요한 기관으로 자리를 잡았다. Rogers는 새로운 치료법에 대한 관심과 혁신적인 자세를 지닌 동료들과 대학생들을 불러 모아 자신의 치료 방법을 훈련하는 한편,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키며 치료 효과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였다.
이 시기에 Rogers는 한 내담자와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는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정하고 요구가 많은 한 여성 내담자에게 2년여 동안 시달림을 받으면서 거의 정신적 파국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Rogers는 이러한 암흑의 시기에 스스로 치유하면서 자신의 깊은 내면과 직면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내재하여 있던 자신에 대한 부정적 신념으로부터 해방되면서 Rogers는 자신을 수용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친밀한 관계 속에서 깊은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능력을 발달시키게 되었다. 그의 전기를 쓴 Thorne(2003)에 따르면, Rogers는 자신이 고통받을 때 내담자 중심 치료에서 제공하는 것과 같은 치료가 너무도 절실하게 필요했기 때문에 그러한 치료를 창시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또한 Rogers는 이러한 자기 치유 경험을 통해서 진정으로 내담자중심치료를 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1951년에 '내담자중심치료'를 출간하면서 Rogers는 많은 열광적 독자들을 확보하였으며 미국 내외에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 책은 내담자 중심 치료를 개인치료뿐만 아니라 놀이치료, 집단활동, 리더십과 관리자 역할, 그리고 교육과 훈련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제시하고 있다. 1956년에 Rogers는 치료과정에 관해 수많은 연구를 수행한 업적을 인정받아 미국심리학회로부터 '우수학술공로상'을 받았다.
인간중심치료
Rogers는 1957년에 위스콘신 대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그가 위스콘신 대학교로 옮긴 주된 이유는 심리학과 정신의학 분야 모두에서 일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기회를 통해서 자신의 치료 방법을 다양한 정신건강 분야에 전파할 수 있기를 원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심리학과 동료들과 대립하게 되면서 심리학과 교수직을 사임하고 정신의학 연구소에서 정신분열증 입원환자에 대한 심리치료 효과를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나 많은 어려움 속에서 특별한 연구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1961년에 출간한 저서 '진정한 사람 되기'는 Rogers의 삶에 새로운 전기를 만들었으며 인간중심치료의 단계로 나아가는 시발점이 되었다. 이 책에서 Rogers는 인간중심 치료의 원리를 강력하고 감동적인 언어로 제시하였으며 심리학의 영역을 넘어서 다양한 사회적 영역에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심리치료뿐만 아니라 교육, 철학, 예술, 과학 등의 다양한 분야로부터 놀라운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 책은 Rogers를 일거에 유명 인사로 만들어 명성과 영향력을 얻게 해주었다.
1963년에 Rogers는 위스콘신 대학교를 떠나 캘리포니아에 있는 '서부 행동과학연구소'로 옮겨 제도적인 속박에서 벗어나 많은 동료와 자유롭게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이 시기에는 참만남 집단운동에 깊이 관여하였으며 주요한 인물로 인정받게 되었다. 1969년에는 '학습의 자유: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지에 대한 한 가지 관점에는 '참만남 집단에 관한 칼 로저스'를 출간하여 많은 호응을 받았으며 그의 영향력은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1968년에 Rogers는 동료들과 함께 '인간연구센터'를 설립하여 사망할 때까지 이 센터의 전임연구원으로 지냈다. 그는 각 분야에서 모여든 40여 명의 구성원들과 지지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깊이 있는 교제를 나누면서 생산적이고 열정적인 노년기를 보냈다.
Rogers는 1970년 후반에 집단 워크숍을 열어 자신의 치료 방법을 대단위 집단에 적용하면서 처음으로 '인간 중심'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며 이후로 자신의 치료 방법을 '인간중심 치료'라고 지칭하였다. Rogers는 말년에 세계공동체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에 관심을 지녔다. 또한 인간 중심적 접근이 결혼제도, 교육, 기업경영, 국가 운영에 걸친 광범위한 영역에 적용될 수 있음을 제시하였다. 1980년에 출판된 그의 저서 '존재의 방식'에서는 미래의 세계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였다. 1985년에는 오스트리아에서 17개 국의 영향력 있는 지도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세계평화와 핵 갈등 문제를 다루는 국제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Rogers는 '카운슬링'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이것은 심리학자들이 심리치료를 하는 것에 반대하는 정신과 의사들의 입을 다물에 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전문 활동의 명칭을 심리치료에서 카운슬링으로 바꿈으로써 그는 심리학자들이 내담자들에게 아무런 손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자신의 위치에서 치료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Rogers는 미국심리학회로부터 1973년에 전문가로서 탁월한 공헌을 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우수전문가 공로상'을 수상했다. 미국의 임상, 상담심리학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Rogers는 현대의 심리치료자들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 나타났으며 노벨평화상 후보로 지목되기도 했다.
Rogers는 말년까지 활발한 사회적 활동을 펼쳤으며 1987년에 85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엄격한 기독교 집안에서 어린 시절 농부가 되고자 했던 Rogers는 나중에 목사가 되기로 마음을 바꾸었지만 강압적인 분위기에 실망하며 임상심리학자의 길로 접어들어 심리치료 분야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그는 세계적인 심리학자이자 심리치료자로서 나아가 평화운동가로서 죽는 날까지 자기 잠재력을 충만하게 실현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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