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gers의 성장 과정과 교육 배경
Carl Rogers는 1902년 미국 시카고 근교의 오크 파크에서 기독교 가정의 5남 1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모두 미국의 중서부 출신이었으며 근본주의적 기독교를 신봉했다. 자녀들에 대하여 많은 애정을 기울였으나 기독교 신앙과 근면성을 강조하며 철저한 통제를 가했다. Rogers의 부모는 가족 모두가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자로서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하며 술 마시고 춤추고 카드놀이 하는 것과 같은 어떠한 사교적 생활도 허용하지 않았다. 세속적인 이웃을 멀리하는 대신 빈틈없이 짜인 가정생활과 생산적인 일을 하도록 독려했다. 이러한 가정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Rogers는 어린 시절에 건강이 좋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서 가족들은 그를 지나치게 예민한 아이라고 놀리곤 했다. 가족을 벗어나 친구를 사귈 기회가 거의 없었으며 자기만의 공상 세계로 빠져들거나 끊임없이 책을 읽으며 위안을 찾는 매우 외로운 아이였다고 Rogers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Thorne, 2003).
Rogers는 12세가 되던 해에 가족과 함께 시카고 서부지역에 있는 농장으로 이주하여 청소년기를 그곳에서 보냈다. 그의 부모가 농장으로 이주한 주된 이유는 자녀들에게 정직한 노동의 가치와 기독교적 신앙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도시 생활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난 농촌 생활이 더 나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Rogers는 청소년기를 고독하게 보냈으며 고등학교를 세 번이나 전학했다. 또한 학교가 멀었기 때문에 과외활동에 참여할 기회가 없어 대부분의 시간을 농업에 관한 책을 읽으며 보냈다. 이때부터 농업에 흥미를 느껴 위스콘신 대학교에 입학하여 농학을 전공했다. 2학년 때에는 기독교 청년협의회에 참석한 후 목사가 되기로 목표를 정하고 전공 분야를 역사학으로 바꾸었다.
그다음 해인 1922년은 Rogers에게 있어서 인생의 전환점이 된 해라고 할 수 있다. 그 해에 Rogers는 북경에서 개최된 국제기독학생연합회에 12명의 미국 대표 중 한 사람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그곳에 머무는 6개월 동안 그는 자신과 완전히 다른 종교와 문화적 배경을 지닌 젊은이들과 교류하면서 다양한 체험과 자유로운 사색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들은 그로 하여금 부모의 종교적 통제에서 벗어나 자신의 인생관을 보다 자유롭게 다시 정립할 수 있는 심리적인 독립을 이루게 하였다. 북경에 체류하면서 Rogers는 어려서부터 알고 지냈던 대학 동창이자 연인인 Hellen Elliot에게 자신이 느낀 경험을 장문의 평지로 전했으며 두 사람의 사랑을 키워갔다.
1924년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역사학으로 학사학위를 받고 졸업한 Rogers는 Hellen과 결혼하려 했으나 부모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부모는 두 사람이 모두 전문직을 가질 때까지 결혼을 해서는 안 된다며 반대했다. 이러한 반대를 무릅쓰고 Hellen과 결혼한 Rogers는 목사가 되기 위해서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이라고 알려진 유니온 신학교에 진학했다. 이 당시 작은 교회에서 설교할 기회를 갖게 된 Rogers는 자신의 의견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을 싫어하는 자신의 특성이 목사라는 직업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강요 적인 신앙에 회의를 느끼며 혼란스러워하던 Rogers는 신학교 근처에 위치하고 있던 컬럼비아 사범대학에서 임상심리학 과목을 수강하게 되면서 커다란 감명을 받고 전공을 신학에서 심리학으로 바꾸게 되었다. Rogers는 아동과 청소년의 성격 적응을 측정하는 검사를 개발하는 연구로 1931년 컬럼비아 사범대학에서 임상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Rogers는 박사학위를 받은 후 로체스터의 아동보호 상담소에서 12년 동안 임상심리학자로 근무했다. 그는 자기 일에 몰두하며 진단과 치료의 목적으로 의뢰된 부적응 아동들을 위해서 헌신했다. 대다수의 아동은 심하게 상처받은 경험을 지니고 있었으며 열악한 환경적 여건으로 인해서 정교한 치료법을 적용하기가 어려웠다. Rogers는 대학에서 배웠던 고급스러운 치료법들이 긴박한 현실에 적용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좀 더 실제적이고 실용적인 접근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이 당시 Rogers는 한 비행 청소년의 어머니와 면담하면서 그녀가 아들에게 하는 행동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친절하게 해석해주었지만 그녀는 이러한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그 대신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를 토로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Rogers는 문제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치료자가 아니라 내담자라는 사실과 더불어 치료의 진행 방향을 내담자에게 맡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Rogers의 치료이론은 하위계층의 아동과 그들의 어머니에 대한 면담 과정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Rogers는 인간의 고통을 치유하는 데 있어서 기법적인 기술보다 치료자의 인간적 면모가 중요함을 강조한 Otto Rank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 1940년에 오하이오 주립대학으로 이직한 Rogers는 자신만의 치료 방법을 발전시키며 학생들을 교육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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