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행동치료의 개요
행동치료는 엄격한 과학 정신에 근거한 행동주의 심리학의 이론 체계에 바탕을 두고 있는 심리치료이다. 행동치료는 인간의 부적응 문제를 추상적인 모호한 개념으로 설명하기보다 관찰과 측정이 가능한 외현적 행동에 초점을 맞춘 실증적인 연구 결과에 근거한 과학적인 설명체계와 구체적인 치료기법을 제시하고 있다. 행동치료는 정신분석 치료를 비판하며 그 대안으로서 20세기 중반부터 급속히 발전하기 시작하여 정신분석 치료와 함께 심리치료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으며 인지행동 치료로 진화하여 현대 심리치료의 가장 주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인간의 내면적인 심리적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미묘하다. 행동주의 심리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심리학이 경험과학의 한 분야로 정립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관찰이 불가능한 내면적 현상보다 측정 가능한 외현적 행동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인간의 심리적 장애 역시 다양한 부적응 행동으로 표출될 뿐만 아니라 이러한 부적응 행동의 잡합체로 분석될 수 있다. 행동 치료자들은 부적응 행동이 어떤 환경적 요인에 의해서 학습되고 지속되며 강화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이해의 바탕 위에서 부적응 행동을 제거하고 치료적 학습을 통해 새로운 적응적 행동으로 대체하는 것이 행동 치료의 주된 목표이다.
행동 치료에서는 부적응 행동이 습득되고 유지되는 과정을 고전적 조건 형성, 조작적 조건형성, 사회적 학습과 같은 학습 이론에 근거하여 설명한다. 또한 부적응 행동을 제거하고 적응 행동을 습득시키기 위해서 행동 조성, 역조건 형성, 체계적 둔감법, 노출 및 홍수법, 사회적 기술 훈련과 같은 다양한 구체적인 치료 기법을 사용한다. 근래에는 사고나 심상과 같은 내현적 행동에 대한 개입 방법을 통해서 치료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현재 행동 치료는 독자적인 치료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지적 심리 치료와 접목되어 인지 행동 치료로 진화되고 있다.
행동치료는 정신 역동적 치료와 달리 내면적 경험보다 외현적 행동의 변화를 중시할 뿐만 아니라 과거 경험보다는 현재의 문제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 또한 단기간의 치료를 선호하며, 문제 행동에 초점을 맞춘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체계적인 계획 속에 치료가 진행된다. 아울러 문제 행동의 개선 정도를 지속적으로 측정하여 치료 효과에 대한 확인과 검증 노력을 기울인다. 행동 치료는 불안 장애를 비롯한 여러 장애에 대한 탁월한 치료 효과가 있는 것으로 검증되고 있다. 이에 반해 우울증을 위시한 일부 장애의 경우에는 뚜렷한 치료 효과를 거두지 못했으나 최근에는 인지적 기법을 통합한 인지 행동 치료로 발전하여 치료 대상과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행동 치료는 심리 치료 분야에서 최초의 엄밀한 과학적인 접근으로서 효과적인 다양한 치료 기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2. 행동치료의 발전과정과 주요 인물
현대 심리학은 19세기 후반에 철학으로부터 독립하여 경험 과학의 한 분야로 태동 되었다. 이 시기에 심리학자들의 과제는 과거의 사변적 심리학을 지양하고 인간의 심리적 현상을 실증적 과학주의에 근거하여 엄밀한 과학으로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행동 치료는 현대 심리학의 과학적 전통과 연구 성과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심리 치료이다.
1) 행동 치료의 발전 과정
행동치료는 창시자 한 사람의 탁월한 역량에 의해 제창된 여러 정신 역동적 치료와 달리 많은 사람들의 공동 노력에 의해 발전하였다. 1900년대 초기에 미국의 심리학자 John B. Watson은 인간의 내면적 과정에 대한 개념들을 거부하고 외현적 행동에 초점을 맞추어 개인의 행동이 어떤 환경적 조건에 의해 학습되는지를 연구하는 것이 심리학의 주된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행동주의라는 심리학의 커다란 흐름을 낳게 되었다. E.L. Thorndike와 B.F. Skinner를 비롯한 많은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동물 대상의 연구를 통해 환경적 조건에 의해 새로운 행동이 형성되는 학습의 원리를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그리고 노벨 생리학 수상자인 러시아의 Ivan Pavlov는 고전적 조건 형성의 원리를 제시하였다. 이러한 학습 심리학의 연구 성과들은 심리적 문제의 치료에 응용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로, 1938년에 O.H Mowrer와 W.M. Mowrer는 조건 형성의 원리를 활용한 야뇨증 치료 방법을 개별 하여 성공적인 치료 효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학습의 원리를 임상적 문제에 적용하려는 시도들은 많은 저항을 받았다. 동물 연구에서 밝혀진 조건 형성의 원리는 인간의 복잡한 문제를 치료하기에는 너무 단순하고 기계적이라는 비판 속에서 임상가들에 의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통제된 실험실 상황에서 동물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실험 심리학자들과 인간의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를 치료하는 임상 심리학자들 간에는 커다란 입장 차이가 존재했다.
이후 1950년대에 접어들어서 행동 치료는 비로소 본격적인 심리 치료의 한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1953년에 Skinner는 "과학과 인간 행동"이라는 저서를 통해서 정신 분석적 개념을 비판하고 행동주의 심리학의 관점에서 심리 치료를 공식화하였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조건 형성의 원리를 임상적 문제에 적용한 결과를 발표하였으며 1968년에는 "응용 행동 분석 학술지"가 창간되었다.
행동치료 발전의 중요한 계기 중 하나는 1958년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Joseph Wolpe가 "상호억제에 의한 심리치료"라는 저술을 통해 학습의 원리를 적용하여 성인의 신경증을 성공적으로 치료한 체계적 둔감법을 제시한 것이다. 그는 조건 형성의 원리를 이용하여 공포증을 치료하는 체계적인 치료 기법을 소개했을 뿐만 아니라 단기간의 치료를 통해 거둔 성공적인 성과와 사례를 제시하였다.
1959년에 영국 런던 대학의 임상심리학자였던 Hans J. Eysenck는 현대의 학습이론을 적용하여 인간의 행동과 정서 장애를 치료하려는 시도들을 행동 치료라고 정의하였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임상 현장에서 행동 치료를 시도하였으며 1963년에는 행동 치료에 관한 연구를 발표하는 전문 학술지인 "행동 연구와 치료"를 창간하였다.
1960년대에는 행동 치료의 이론적 기반과 치료 기법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행동 치료자들은 사회 심리학, 발달 심리학, 성격 심리학과 같은 다양한 심리학 분야의 이론과 연구를 받아들여 치료 방법을 다양화시켜 나갔다. 이러한 과정에서 대리적 학습과 자기조절 과정을 중시한 Albert Bandura의 사회 학습 이론은 행동 치료의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하였다. 행동 치료는 공포증, 강박 장애, 아동 및 청소년 장애, 중독 문제와 같은 다양한 심리적 장애를 치료할 수 있는 치료 방법을 개발하여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그 결과 1900년대 중,후반기에 행동 치료는 이론 체계와 치료 기법이 정교화되어 치료의 영역이 확장되면서 정신 분석 치료와 더불어 심리 치료의 양대 조류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70년대 이후에는 행동 치료가 인지적 과정과 기법을 통합하여 인지 행동 치료로 진화하게 된다. 2000년대에 들어서 행동치료의 전통은 마음 챙김이나 수용과 같은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여 다양한 치료의 형태로 확장되고 있다.
Hayes(2004)는 행동 치료의 발전 과정을 크게 세 세대 또는 흐름(wave)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세대는 1900년대 중반에 Skinner, Wolpe, Bandura 등에 의해서 개발된 전통적인 행동 치료이다. 이 단계의 행동 치료는 행동의 변화를 목표로 한다. 즉 문제 행동을 직접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예컨대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하기를 두려워하는 내담자의 경우, 치료의 일차적 목표는 학습의 원리를 적용하여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를 할 수 있도록 변화시키는 것이다.
1970년대 이후에 나타난 두 번째 흐름의 행동치료는 문제행동을 유발하는 인지적 요인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치료로써 인지행동치료라고 불린다. 2세대의 행동치료는 문제행동을 유발하는 매개요인인 인지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부적응적인 인지를 직접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주력한다. 예컨대 발표 불안을 지닌 내담자의 경우 발표와 관련된 비합리적 신념이나 부적응적 사고를 변화시킴으로써 발표 불안을 완화시키는 것이다. Ellis의 합리적 정서행동치료나 Beck의 인지치료가 2세대 행동치료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행동치료의 세 번째 흐름은 2000년 이후에 마음챙김, 수용, 치료적 관계, 정서적 표현 등을 행동치료 방략에 유연하게 통합한 다양한 치료법들을 뜻한다. 이러한 3세대 행동 치료로는 변증법적 행동치료, 수용전념치료, 마음 챙김에 근거한 인지치료 등이 있다. 3세대 치료법들은 행동이나 인지의 내용보다 그 기능에 초점을 맞춘다. 즉 특정한 행동이나 인지 내용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문제 행동을 유발하는 심리적 맥락을 중시하고 상위인지적 태도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예컨대 발표불안을 지닌 내담자의 경우 발표 불안을 제거하려고 애쓰기보다 발표불안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수용하고 비평가적으로 관찰하게 한다. 불안을 부적절한 것으로 생각하여 제거하려는 노력이 오히려 불안을 지속시키거나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불안해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치 있게 여기는 활동을 효과적으로 행하는 것이다. 마음챙김과 수용은 특정한 경험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심리적 체험의 전반에 대한 상위 인지적 태도를 갖추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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