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분석심리학의 기본가정
융의 분석심리학은 체험에 근거한 심리학 이론이다. 정상인과 정신장애 환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관찰하고 융 자신의 마음을 깊이 살펴본 경험을 토대로 엮은 이론이다. 분석심리학은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을 둔 이론으로서 객관적인 사실이나 절대적인 진리에 관해서 말하고 있지는 않다. 분석심리학에서는 개인의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실과 경험에 초점을 맞출 뿐 그것의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을 판단하지 않는다. 융에게 있어서 "관념은 그것이 존재하는 한 심리학적으로 진실이다." 분석심리학은 개인의 주관적 경험에 근거하여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적용할 수 있는 개념과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
융은 다음과 같은 언급을 통해서 자신의 학문적 입장과 삶에 대한 태도를 표현한 바 있다. "나의 생애는 무의식이 그 자신을 실현한 역사다.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은 사건이 되고 밖의 현상으로 나타나며, 인격 역시 그 무의식적인 조건에 따라 발전하며 스스로를 전체로서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묘사함에 있어 나는 과학적인 언어를 사용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나는 나 자신을 과학의 문제로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면적인 관점에서 본 우리의 존재, 즉 인간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영원한 본질적인 속성은 오직 신화로서만 묘사될 수 있다. 신화는 보다 개성적이며, 과학보다 더욱 정확하게 삶을 묘사한다. 과학은 평균 개념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데, 이것은 너무 일반적이어서 개인의 특유한 인생이 지니고 있는 주관적인 다양성을 올바르게 파악하기 어렵다."
분석심리학은 무의식의 존재와 영향력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정신분석 이론과 공통점을 지닌다.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과정이 인간의 성숙에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점도 같다. 그러나 분석심리학은 무의식의 기능과 내용에 대해서 정신분석 이론과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실체를 성욕과 같은 미숙하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본 반면 융은 무의식을 개인의 삶에 방향을 제시하는 지혜로운 것으로 여긴다. 환자가 나타내는 증상의 의미에 대해서 프로이트는 과거에 경험한 상처의 결과라고 보는 반면 융은 미래에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보았다.
융의 분석심리학은 인과론적인 관점보다는 목적론적인 관점에 근거하고 있다. 인간의 마음은 무의식을 좀 더 충만하게 발현하도록 기능하는 자기 조절적인 체계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과거 경험에 의해 밀려가기보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존재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을 성욕과 같은 본능적 욕구에 의해 전전긍긍하며 떠밀려가는 존재라고 본 반면 융은 무의식의 발현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라고 보았다. 인간은 과거의 원인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목적을 위해서 행동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융은 무의식이 전체성과 통일성을 이루며 진정한 자기를 발현하는 개성화 과정을 중시했다.
융은 인간의 마음을 환원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반대했다. 즉 심리적인 것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이해하고자 했으며 뇌 기능이나 다른 신체적 기능으로 설명하려는 어떠한 접근도 배격했다. 융은 인간의 삶과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객관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인간을 이끌어나가는 어떤 정신적 존재, 즉 영혼을 가정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영혼에 의해서 움직인다. 인간의 마음은 그러한 영혼을 받아들이는 그릇일 뿐이다. 그러나 자아의 기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자아의 결단 없이는 어떠한 무의식도 의식으로 동화될 수 없다. 자아는 우리 마음의 주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마음을 관리하는 문지기라고 할 수 있다. 융은 자아의식을 넘어선 광대한 정신세계를 지적함으로써 인간 정신의 전체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2) 분석심리학의 주요 개념
융이 제시하는 성격 이론의 핵심은 정체성이다. 인간의 성격 전체를 융은 '영혼'이라고 불렀으며 이는 모든 사고, 감정, 행동, 의식과 무의식을 포함한다. 융에 따르면 인간은 여러 부분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의 통합적 전체다. 인간은 전체성을 지니고 태어나며 분화와 통합을 반복하며 전체성을 발현해나간다. 인간이 일생을 통해서 추구해야 할 것은 타고난 전체성을 되도록 최대한으로, 분화된 것을 일관성 있고 조화롭게 발전시키는 것이다. 뿔뿔이 흩어져 제멋대로 움직이며 갈등을 일으키는, 즉 여러 체계로 분화되어 분열된 성격은 건강하지 못한 성격이다. 융은 자기(Self)를 성격의 중심이자 전체로 보았다.
(1) 의식, 개인 무의식 그리고 집단 무의식
융은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면서 세 가지 수준의 마음, 즉 의식, 개인 무의식, 집단 무의식으로 구분했다. 의식은 개인이 유일하게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며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성장해간다. 개인은 타인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고유한 존재로 성장하는데, 융은 이러한 과정을 개성화라고 지칭했다. 개성화의 목표는 개인이 가능한 한 완전하게 자신의 전체성을 인식하는 것, 즉 '자기의식의 확대'에 있다. 개성화는 무의식적인 내용을 의식으로 가져옴으로써 이룰 수 있다. 의식이 증가하면 개성화도 증대된다. 이러한 의식의 중심에는 자아가 존재한다. 자아는 개인의 정체성과 자기가치감을 추구하며 자신과 타인과의 경계를 수립하여 구분하는 기능을 한다. 뿐만 아니라 자아는 의식에 대한 문지기 역할을 하며 지각, 사고, 기억, 그리고 감정이 의식될지 여부를 판단한다. 인간은 의식의 중심에 있는 자아가 다양한 경험의 의식화를 허용하는 한계 내에서 개성화를 이룰 수 있다.
개인 무의식은 자아에 의해서 인정받지 못한 경험, 사고, 감정, 지각, 기억을 의미한다. 개인 무의식에 저장된 내용들은 중요하지 않거나 현재의 삶과 무관하다고 여겨지는 것일 수 있다. 또는 개인적인 심리적 갈등, 미해결된 도덕적 문제, 정서적 불쾌감을 주는 생각들과 같이 여러 가지 이유로 억압된 것일 수 있다. 이러한 개인 무의식은 꿈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개인 무의식의 고통스러운 사고, 기억, 감정들이 어떤 주제를 중심으로 뭉치고 연합되어 심리적인 복합체를 이룰 수 있는데, 이를 콤플렉스라고 한다.
콤플렉스라는 용어는 다른 학자들도 사용하고 있는데, 융이 단어연상검사를 통해 발견한 심리적 구조를 지칭하기 위해 처음 사용한 것이다. 융의 콤플렉스가 다른 이론가의 콤플렉스와 구분되는 점은 원형적 핵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융의 콤플렉스는 개인 무의식뿐만 아니라 집단 무의식의 요소를 지니고 있으며 아버지 콤플렉스, 어머니 콤플렉스, 구세주 콤플렉스, 순교자 콤플렉스와 같이 원형과 관련된 핵심적 주제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콤플렉스는 개인에게 의식되지 않은 채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콤플렉스를 의식화하는 것이 심리치료의 목표가 된다.
집단 무의식은 융의 이론이 다른 이론들과 가장 차별화되는 개념이다. 집단 무의식은 개인 무의식과 달리 특정한 개인의 경험과 인식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집단'이라 함은 그 내용들이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집단 무의식은 인간에게 전해 내려온 보편적인 경향성으로서 신화적 모티브의 표상을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인간은 유사한 생리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비슷한 환경적 요소를 공유하기 때문에, 개인은 세상에 대해서 보편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반응할 수 있는 소질들을 가지게 된다. 이처럼 개인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인류 보편적인 심리적 성향과 구조가 집단 무의식이다. 집단 무의식을 구성하는 주된 내용은 본능과 원형이다. 본능은 행동을 일으키는 충동을 의미하며, 원형은 경험을 자각하고 구성하는 방식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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