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사
내사(introjection)는 개체가 환경의 요구를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은 환경과의 접촉을 통하여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외부로부터 받아들인다. 이때 자신에게 적절한 것은 선별하지 못하고 비판 없이 받아들이면, 그러한 외부의 요구는 자신의 것으로 동화되지 못한 채 개인의 행동이나 사고방식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내사가 심한 사람들은 자신의 진정한 욕구가 무엇인지 잘 모른 채 타인의 기대에 따라 맞추어 사는 데 익숙하다. 이들은 윗사람의 요구를 잘 따르는 '모범생'으로 여겨질 수 있으나 스스로 자기 삶의 목표를 정하여 창의적인 삶을 사는 것을 두려워한다. 또한 피상적이고 판에 박힌 행동을 하며 깊은 대인관계를 맺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Perls에 따르면 개인이 부모와의 과도한 동일시를 통해서 부정적 측면까지 내사하는 경우에 신경증이 발생한다. 부모의 긍정적 측면은 자신의 것으로 쉽게 동화될 수 있지만, 부정적 측면은 동화되지 못한 채로 내사되어 개인의 통합성을 방해하여 장애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신경증은 개인이 자기 자신과 자신이 아닌 것 사이를 분명히 구분하지 못하는 것, 즉 '경계 장애'라고 할 수 있으며, 내사는 대표적인 경계 장애의 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심리치료는 무엇이 자기이고 무엇이 자기가 아닌지를 명확히 구분하도록 도와주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2) 투사
투사(projection)는 자기 생각이나 욕구, 감정을 타인의 것으로 지각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자신이 타인에 대해 애정이나 적대감을 갖고 있으면서 오히려 타인이 자신에게 그러한 감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지각하는 것이다. 투사를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개체는 투사함으로써 자신의 욕구가 좌절되는 것보다 고통을 덜 받게 된다. 또한 투사함으로써 자신의 억압된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효과도 갖는다. 예를 들어 자신의 공격성을 억압하고 타인에게 투사하는 내담자의 경우 투사를 함으로써 자신의 공격성을 방어하는 동시에 타인을 매개로 하여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된다. 투사는 내사의 영향에 의해 생길 수도 있다. 즉 개체에 내사된 가치관이나 도덕적 규범 때문에 자신의 특정한 욕구나 감정을 허용할 수 없는 경우에 이를 타인의 것으로 지각함으로써 해결하려 할 수 있다.
많은 대인관계 갈등은 자신의 내면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들을 타인에게 투사함으로써 나타난다. 우리 내면의 부정적 요소를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기보다 자신 밖에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타인을 사악한 존재로 규정하며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특정한 행동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의 경우에도 투사가 작용할 수 있다. 자신이 내사된 가치관 때문에 무척 하고 싶은 충동적 행동을 억압하고 있는데, 이러한 행동을 하는 타인을 보게 되면 마치 자신의 충동이 통제를 벗어나려 하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으로 나타내게 된다.
투사 그 자체가 병적인 것은 아니다. 투사 능력이 없으면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은 자신의 심리를 근거로 해서 타인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신의 투사행위를 모르고 있을 때 발생한다. 투사는 자신의 유기체적 욕구를 자각하고 접촉하며 해소하는 과정을 방해할 뿐 아니라 타인과의 접촉도 방해한다. 타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과 욕구를 타인의 것으로 지각함으로써 타인과의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3) 융합
융합(confluence)은 밀접한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이 서로의 독자성을 무시하고 동일한 가치와 태도를 지닌 것처럼 여기는 것이다. 융합의 관계는 흔히 외로움이나 공허감을 피하기 위한 경우가 많다. 융합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감이 부족하며 다른 사람의 도움을 빌리지 않으면 혼자서 어떤 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혼자 있는 것은 커다란 공포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의 개성과 주체성을 포기하고 타인과 합치는 것이 외로움과 공허감을 직면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융합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 지극히 위해주고 보살펴주는 사이인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서로 독립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의존관계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관계는 부부 사이나 부모-자녀 사이에서 많이 발견되지만 오랫동안 사귄 친구 사이나 개인과 소속 단체 사이에도 존재할 수 있다. 이들은 서로 간에 어떤 갈등이나 불일치도 용납하지 못하며 서로의 관계를 깨뜨리는 행동은 암묵적인 계약을 위반하는 것이므로 상대편의 분노와 짜증을 사게 되고 그러한 행동을 한 사람은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융합은 경계성 성격장애를 지닌 내담자에게 많이 나타난다. 이런 내담자의 성장 과정을 보면 부모-자녀 관계가 지나치게 밀착되어 있어 분명한 경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내담자에게는 부모, 특히 어머니와의 경계를 분명하게 그어주는 작업을 해야 한다. 자기 자신의 욕구를 자각하고 자기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가르치는 한편, 부족한 자신감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4) 반전
반전(retroflection)은 개인이 다른 사람이나 환경에게 하고 싶은 행동을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 혹은 타인이 자신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행동을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을 뜻한다. 즉 반전은 타인이나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대신에 자기 자신을 행동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타인에게 화를 내는 대신에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거나 타인으로부터 위로받는 대신에 자위하는 것이 그 예이다.
반전은 개인이 성장했던 환경이 억압적이거나 비우호적이어서 자연스러운 접촉 행동을 할 수 없는 경우에 부모와 환경의 태도를 자신의 것으로 내사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개인은 반복되는 내사로 인하여 내면세계가 두 파트로 분열되어 한쪽은 행위자로 다른 쪽은 피행위자로 된다. 그래서 원래는 개체와 환경 간의 갈등이었던 것이 이제는 개체의 내부 갈등으로 바뀌게 된다.
대부분의 반전은 감정 중에 분노로 인해 일어난다. 분노는 개체의 가장 중요한 미해결 감정 가운데 하나로서 분노 감정의 차단은 다른 정서의 인식과 표현을 방해한다. 분노 감정이 해결되지 않으면 시간이 흘러도 분노는 사라지지 않은 채 미해결 과제로 남아 다른 긍정적인 감정을 체험할 기회를 방해한다.
반전은 신체적 통증, 강박 증상, 열등의식, 죄책감, 우울증 등을 유발할 수 있다. 개체의 내부에서는 에너지가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만 개체는 이를 통제하므로 팽팽한 긴장상태가 생겨 신체적인 긴장과 통증으로 나타날 수 있다. 겉으로는 자신이나 타인에게 무의미해 보이는 행동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강박 증상은 해소되지 않은 유기체적 욕구와 이를 반전하는 자기 부분과의 싸움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또한 자기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비난하는 열등의식은 원래 타인에 대한 자신의 평가적인 행동을 자기 자신에게 되돌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죄책감 역시 분노가 반전된 것이다. 개인이 자신을 행위자와 피행위자로 양분하고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이 죄책감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우울증 환자들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분노나 불만감을 표현하지 못하고 그것을 자기 자신에게 반전시킴으로써 죄책감에 빠지고 우울하게 된다. 이러한 반전이 심해지면 자살을 시도하게 되는데, 자살은 개체가 타인에 대한 적개심을 송두리째 자신에게 향하게 함으로써 자신을 파괴하는 행동으로 볼 수 있다.
(5) 자의식
자의식(egotism)은 개체가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의식하고 관찰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것은 자기 행동에 대한 타인의 반응을 지나치게 의식하기 때문에 생긴다. 자의식은 반전으로 인해 생기는 현상이다. 즉 개체가 자신의 주의를 외부 대상으로 향하는 대신 자기 자신에게 향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다. 자의식은 개체가 어떤 행동을 하고 싶은 욕구나 감정을 지니고 있지만, 그러한 행동을 했을 때의 결과를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행동을 억제한 채 엉거주춤한 상태로 자신의 어색한 모습을 의식하게 될 때 생기는 심리상태이다. 이러한 경우에 행동으로 표현되지 못한 욕구나 감정은 배경으로 사라지지도 전경으로 나타나지도 못하고 중간층에 머물게 되면서 접촉경계의 혼란을 일으키게 된다.
자의식이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싶고 관심을 끌고 싶지만 거부당할까봐 두려워 행동을 드러내놓고 하지 못한다. 이들은 여러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해야 한다든가, 여러 사람이 앉아 있는 앞을 지나가야 하는 등 많은 사람으로부터 시선을 받는 순간 자의식이 심해진다. 대인공포증을 보이는 사람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6) 편향
편향(deflection)은 개인이 환경과의 접촉으로 인해 감당하기 힘든 심리적 결과가 초래할 것이라고 예상할 때 이러한 경험에 압도당하지 않기 위해서 환경과의 접촉을 피해버리거나 자신의 감각을 둔화시킴으로써 환경과의 접촉을 약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말을 장황하게 하거나 초점을 흩트리는 것, 말하면서 상대편을 쳐다보지 않거나 웃어버리는 것,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고 추상적인 차원에서 맴도는 것, 자신의 감각을 차단시키는 것이다.
편향은 개인이 불안, 죄책, 갈등, 긴장 등 여러 가지 부정적인 심리상태를 피하기 위해 사용하는 적응 기제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불안의 방어가 중요한 목적이다. 불안은 개인이 체험하는 다양한 종류의 고통과 부정적 감정에 총체적으로 관여하기 때문이다. Perls에 따르면 불안은 행동으로 옮겨질 수 없는 흥분 또는 억제된 흥분 에너지다. 즉 개인이 어떤 행동을 하고 싶은 욕구나 감정을 느낄 때 흥분 에너지가 동원되지만, 흥분을 행동으로 옮겼을 때 초래되는 좌절 상황을 예상해서 흥분을 억제하게 되는데, 그때 느끼는 감정이 불안이라는 것이다. 편향은 불안을 막는 방법으로써, 흥분 에너지 자체를 피해버리거나 둔화시키는 책략을 택한 것이다. Perls에 의하면 개인이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지금-여기'에 충실히 몰입하게 되면 흥분은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게 되고 불안은 체험되지 않는다. 개인이 '지금-여기'를 떠나 미래의 부정적 결과를 예상하면 '지금-여기'의 흥분은 억제되고 행동으로 바뀌지 못한 흥분은 불안으로 더욱 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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