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리 이론
아들러는 개인의 적응 수준을 정상과 비정상의 이분법으로 분류하지 않고 연속선상에 있는 것으로 간주했다. 또한 개인을 정신 병리적 관점에서 보려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부적응 문제를 정신장애 범주로 분류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그는 정신병리에 대한 어떠한 체계적인 설명이나 이론도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개인이 나타내는 부적응 문제와 증상이 그의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이해하고자 했다.
아들러에 따르면 인간의 모든 행동은 목적성을 지닌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나름대로 추구하는 목표와 맞는 방향으로 행동한다. 모든 행동에는 그로 인한 보상과 대가가 있기 때문이다. 내담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나타내는 증상이 어떤 목표를 위해 어떤 기능을 하고 있으며, 어떤 유용성을 지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만약 어떤 증상이 주는 이득이나 기능이 없다면, 그러한 증상은 신체적인 원인에 의한 것일 수 있다. 따라서 심리 치료자들은 내담자가 나타내는 행동과 증상의 유용성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그러한 물음에 대한 해답을 통해서 내담자가 나타내는 증상의 심리적 원인을 이해할 수 있다.
아들러에 따르면, 대부분의 부적응적인 증상은 자기 이해의 부족에 기인한다. 내담자가 나타내는 부적응 문제는 내담자 자신이 어떤 인생 목표를 지니고 있으며 어떤 생활 양식을 통해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기인한다. 아들러는 초기에 모든 부적응적 행동을 열등감에 기인한 것으로 보았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열등감을 보상하고 우월성을 추구하기 위해서 나름대로의 가상적인 최종 목표를 추구한다. 그런데 이러한 내면적인 목표를 부인하고 삶의 도전적 과제를 회피하는 열등 콤플렉스를 지니거나 비현실적인 주관적 우월감에 빠져 있는 우월 콤플렉스를 지닐 경우 개인의 삶은 부적응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아들러는 나중에 공동체 의식과 사회적 관심의 결여가 정신병리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공동체 의식의 결핍으로 인한 부적절감과 긍정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무능력으로 인해 정신병리가 유발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평등하다고 느끼는 동시에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것으로 느끼는 개인은 건강하고 건설적인 방식으로 사회적 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열등하거나 우월하다고 느끼면, 공동체 의식이 저하될 뿐만 아니라 공동체보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게 된다. 이처럼 다른 사람들이나 공동체와 괴리되는 경향이 심화되면 부적응적인 삶의 상태로 전락하게 된다.
아들러는 정신 장애가 어린 시절의 경험, 특히 가족 환경과 출생 서열에 대한 아동기 경험과 관련되어 있다고 보았다. 다양한 정신 장애는 각기 다른 생활 양식과 아동기 경험을 반영하고 있으며 나름대로의 심리적 기능을 지니고 있다.
불안은 자존감을 보호하기 위해서 개인이 인생 과제와 거리를 두려는 일종의 보호 기제이다. 불안 장애 환자는 용기를 잃은 상태에서 자신의 약점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며 삶의 선택과 결정을 주저하거나 미루는 경향이 있고 다른 사람이나 어려운 과제로부터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고자 한다. 이와 같은 신경증적 문제는 초기 아동기 경험에 기인하는 경향이 있다. 응석받이로 자란 아동은 인생 과제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동생이 태어나거나 학교 생활을 시작하는 경우처럼 환경의 변화가 일어나면 용기를 잃고 현실적 상황을 무거운 부담으로 여기게 된다. 최초의 신경증적 증상은 흔히 복통, 호흡기 증상, 야뇨증과 같이 신체 기관의 역기능적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증상의 목적은 부모로 하여금 아동에게 굴복하게 하는 동시에 현실적인 책임으로부터 면제받기 위한 것이다.
강박증 환자는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고 미루면서 자신의 에너지를 삶의 기본 과제 해결에 사용하는 대신 강박 행동을 하는 데에 소진시켜 버린다. 이들에게 시시각각 다가오는 시간은 자신들이 대처할 수 없는 삶의 문제에 직면하도록 강요하는 위험한 적으로 여겨진다. 강박 행동이 적개심의 표현인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 당면한 과제의 해결을 미루면서 강박행동에 매달림으로써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나 부담을 주게 된다. 아울러 복잡한 진짜 문제를 단순하게 되풀이하는 과제와 혼동함으로써 강박 행동을 통해 진짜 문제를 회피할 수 있다.
우울증은 개인의 자존심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우울증 환자는 일상생활의 부담을 과장하고, 도달할 수 없는 인생 목표를 추구하며, 그 목표를 성취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타인이나 생활 환경을 탓한다. 우울증 환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를 가지며, 타인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컨트롤하고 생활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자신의 약점이나 불평을 이용한다. 아들러는 우울증의 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자살의 사회적 의도를 지적하면서 청소년의 자살은 보복 행동이라고 여겼다. 우울증에는 보복의 요소가 있어서 누군가를 걱정하게 만들고 죄의식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자살 위협은 낮은 공동체감과 더불어 응석받이로 자란 생활 양식을 반영하며 타인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우울증은 자신의 내면을 향한 분노이며, 자신에게 상처를 입힘으로써 타인에게도 상처를 주어 자신의 자아를 달래는 피학적 시도라고도 할 수 있다.
중독은 불안, 우울, 성적 불만족과 같은 신경증적 문제뿐 아니라 소심함, 고립에 대한 욕망, 과민함, 초조함 등으로 나타나는 열등감에 근거한다. 약물 사용을 통한 기분 전환의 갈망은 오만함이나 권력 추구와 같은 형태의 우월감 콤플렉스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마약 중독자의 생활양식에 대해 연구한 Lombardi(1969)에 따르면 중독자들이 회상하는 초기 기억의 주제는 자신들을 매우 나약하고 의존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중독자들은 경쟁보다는 고립, 과민함, 초조, 조바심 등의 신경증적 증상을 지니는데 마약이 전능감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에 이에 중독될 수 있다.
아들러는 범죄의 근본 원인으로 공동체감의 결여를 지적했다. 범죄자는 도움을 받거나 타인에게 부담이 되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고 마치 전 세계가 자신을 대적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아동기에 응석받이로 자라서 받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는 생활양식을 성인기까지 유지하거나 아동기에 보살핌을 받지 못해서 적대적인 세계를 직접 경험했거나 또는 학업 적응의 실패 때문에 불이익을 당했던 반항적인 친구 집단에 속했던 사람들에게서 범죄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 이들은 우월을 추구하는 강력한 동기를 지니며 매우 무책임한 행동 패턴을 나타낸다.
경계선 성격장애는 어린 시절에 아동이 삶의 과제를 해결하기에 불리하고 무력하다고 느꼈던 가족 상황에서 비롯된다. 경계성 성격 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융통성 없는 인지 방식을 지니고 경직된 일반화를 통해서 사람들을 실제 모습으로 인식하지 못하며 전적으로 좋거나 나쁜 사람으로 구분한다. 이들은 또한 어떤 일이 잘못된 것에 대해서 다른 사람을 비난하며, 통제할 수 없는 외부 환경에 대해서 희망과 절망의 양극단을 치닫는 감정의 변화를 보인다. 이들은 감정에 따라 자존감이 급변하고 어떤 소속감이나 헌신감이 결여되어 있으며 공동체에 대한 의무감도 거의 느끼지 않는다.
정신분열증 환자는 낮은 자존감을 갖고 있으며, 지나치게 이상화되고 팽창된 우월감을 통해서 낮은 자존감을 보상하려 한다. 이들은 아동기에 극도의 박탈, 어머니의 이중적인 양육 태도, 기질적 요인, 만성적 질병, 부모로부터의 분리 등으로 인해서 깊은 열등감을 갖게 된다. 이러한 열등감을 보상하기 위해서 아동은 자신이 매우 특별하고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좌절시키는 적이라는 견해를 발달 시키게 된다. 이러한 아동은 비 협동적인 태도를 지니게 되어 다른 사람을 착취하거나 주변 사람을 비난하기도 한다. 정신 분열증의 주된 증상인 환각, 편집증적 투사와 망상은 환자의 자존감을 보호하는 한편, 인생 과제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수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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