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울증
우울증을 설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이론은 Beck의 인지 이론이다. Beck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들은 자기, 미래, 주변 환경에 대해서 부정적인 사고와 심상을 지닌다. 즉 우울한 사람들은 자기(Self)에 대해서는 결점이 많고 부적절하며 무가치하고 사랑받지 못할 존재라고 생각한다. 또한 자신의 미래(future)에 대해서는 비관적이고 현재의 어려움이 계속될 것으로 여기며, 세상(world)에 대해서는 세상과 타인이 자신에게 적대적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우울한 사람들이 부정적인 생각을 지니는 세 가지 주제(자기, 미래, 세상)를 인지삼제(cognitive triad)라고 한다. 우울한 사람들은 이러한 부정적인 사고에 따라 모든 것이 패배와 상실로 귀결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상황을 개선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으며 사회적으로 위축되게 된다.
우울한 사람들이 부정적인 사고를 하는 바탕에는 역기능적 신념과 인지도식이 존재한다. 우울한 사람들은 자신과 세상에 대해 완벽주의적이고 당위적이며 융통성이 없는 역기능적 신념을 지니고 있다. Beck(1983)에 따르면 역기능적 신념은 '~해야 한다.' 또는 '~해서는 안 된다.'라는 당위적 명제의 형태를 지니며, 현실적인 삶 속에서 실현되기 어려운 것으로 흔히 좌절과 실패를 초래하게 된다. 역기능적 신념은 우울증을 유발하는 인지적 취약성으로 작용하게 된다. 즉 부정적 생활사건에 부딪히면 잠재되어 있는 역기능적 인지도식이 활성화되어 사건의 의미를 특정한 부정적 방향으로 왜곡하여 해석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우울 증상을 일으키게 된다.
역기능적 신념은 크게 사회적 의존성(sociotropy)과 자율성(autonomy)으로 나뉜다. 사회적 의존성은 타인의 인정과 애정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경향성으로 "나는 주변의 모든 중요한 사람으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사랑과 인정 없이 나는 행복해질 수 없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결코 미움을 받아서는 안 된다." 등이 포함된다. 자율성은 개인의 독립성과 성취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경향성으로 "다른 사람에게 종속되거나 지배당해서는 안 된다."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야 한다. 절대로 실수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보다 우월해야 한다." "인간의 가치는 그 사람의 성취에 의해 결정된다." 등이 있다. Beck은 특수 상호작용 모델(specific interaction model)을 통해, 한 개인이 지닌 역기능적 신념에 따라 우울증을 유발하는 부정적인 생활사건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제시하였다. 즉 사회적 의존성이 높은 사람은 대인관계와 관련된 부정적 사건(이별, 이혼, 별거 등)이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으며 자율성이 높은 사람은 독립성과 성취 지향적 행동이 위협받는 생활사건(학업적 실패, 실직)이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다.
(2) 불안장애
우울증이 과거의 사건을 실패와 상실로 과장되게 해석한 결과라면, 불안장애는 미래의 사건을 위험과 위협으로 과장되게 예상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Beck, Emery, Greenberg, 1985) 불안한 사람들은 세상을 재난이 일어나거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해칠지 모르는 위험한 곳으로 인식한다. 불안장애의 공통적인 주제는 위험과 위협이며 불안증상은 위험과 위협에 대한 과장된 반응이다. 진화론적 관점을 취하고 있는 Beck은 불안장애가 동물 행동에서 나타나는 투쟁, 도피, 동결 반응에 기인하는 것으로서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주된 위험의 속성이 신체적인 것에서 심리·사회적인 것으로 변화됨에 따라 나타난 부적응적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불안장애는 위협에 대한 극단적인 반응이다. 이러한 불안장애의 중심적 인지는 위험에 대한 비현실적 자각, 통제 상실에 대한 파국적 해석, 그리고 인간관계가 부정적으로 변화될 것이라는 지각으로 구성된다.(Clark, Beck, 1989)
불안장애의 여러 하위유형은 위험에 대한 사고 내용에 있어서 각기 다른 특성을 나타낸다. (권석만, 2003) 즉 범불안장애는 다양한 상황의 위험 가능성을 과민하게 포착하기 때문에 만연된 과도한 걱정으로 나타나는 장애이며, 공포증은 특정한 상황에서 받을 수 있는 신체적, 심리적 상해를 과장하여 예상한 결과로 나타난다. 공황장애는 자신의 신체적 반응을 심장마비와 같은 임박한 위험의 징후라고 파국적인 오해석을 하기 때문에 발생하며, 강박장애는 내면적인 사고나 심상을 위험한 것으로 해석하여 의도적으로 억제하지만 역설적 반동효과에 의해서 그러한 사고와 심상이 더욱더 의식에 떠오르게 되는 현상이다.
(3) 성격장애
성격장애는 정보처리 과정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인지도식과 신념체계의 특성에 기인한다. (Beck, Freeman, Davis, 2004) 각 성격장애는 독특한 신념, 태도, 감정 및 반응방략들로 구성된다. 예컨대 회피성 성격장애는 거절과 상처에 민감한 인지도식을 지니며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나의 참모습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날 거부할 것이다."와 같은 신념을 지닌다. 따라서 다양한 사회적 상황에서 부적절한 느낌을 느끼며 불쾌감을 감소시키기 위해서 이러한 상황을 회피하는 방략을 사용한다. 자기애성 성격장애는 자신의 우월성과 특별대우에 민감한 인지도식을 지니며 "나는 특별한 존재이므로 당연히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나는 일반인에게 적용되는 규칙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같은 신념을 지닌다. 따라서 평소에 우월감을 느끼며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면 심한 분노를 느낀다. 이들은 타인을 이용하거나 헌신하도록 조종하는 방략과 더불어 일상적 규칙을 넘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략을 사용한다. 이처럼 각 성격장애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내용의 인지도식과 기저 신념에 근거하고 있다.
성격장애를 유발하는 인지도식과 역기능적 신념은 개인의 유전적 소인과 더불어 타인이나 특수한 외상 사건으로 인한 부정적인 경험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생겨난다. 인지도식이 일단 형성되면 그와 일치하는 정보에 선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해석하여 반응함으로써 인지도식이 더욱 강화된다. 이러한 인지도식의 자기 영속화 과정을 통해서 성격장애는 지속되고 강화될 수 있다. Jeffrey Young과 동료들은 성격장애를 효과적으로 치료하기 위한 심리도식치료를 제시하면서 성격장애의 인지적 특성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4) 섭식장애
섭식장애는 자신의 신체상에 대한 왜곡된 사고에 의해서 발생한다. 신경성 식욕 부진증을 지닌 사람들은 매우 마른 몸매를 이상적이라고 여길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매를 실제 이상으로 뚱뚱하다고 왜곡하여 인식한다. 아울러 "내 몸매와 체중은 내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존중 받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만약 몸무게가 늘어난다면, 나는 매우 흉하게 보일 것이다." "내 인생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내 몸무게뿐이다." "만일 굶지 않는다면, 나는 완전히 뚱보가 될 것이다."와 같은 역기능적 신념들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식사 후에 느끼는 포만감을 뚱뚱해진다는 신호로 잘못 해석하며 사진이나 거울에 미친 자기 모습을 실제보다 더 뚱뚱한 것으로 과장하여 해석하는 인지적 왜곡을 나타낸다.
이 밖에도 인지치료에서는 물질 남용과 중독 현상을 유발하는 부적응적 인지를 제시하고 있다. 중독증 환자들은 알코올이나 마약과 같은 중독물질의 긍정적 효과에 대해서 잘못된 신념을 지닌다. 예컨대 알코올 중독 환자들은 술을 마시면 고통스러운 감정이 감소될 뿐만 아니라 기분이 좋아지며 인간관계가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성적 능력도 향상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신념이 중독물질을 남용하게 만드는 심리적 원인으로 작용한다.
Beck(1998)은 부부를 위한 자기치료서인 '사랑만으로 충분치 않다'에서 어려움을 겪는 관계에도 인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인간관계의 문제를 지닌 사람들은 인간관계에 대해서 비현실적이고 비합리적인 기대와 기준을 지닐 뿐만 아니라 문제의 원인을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기인하여 비판하는 인지적 특성을 지닌다. 이처럼 인지치료는 다양한 문제와 장애에 관여하는 인지적 요인을 명확히 밝혀내어 그것을 변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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